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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리뷰] Deathconsciousness - Have A Nice Life

브라이언리 2022. 7. 17.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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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thconsciousness - Have A Nice Life

Post Punk / Shoegaze / Post-Rock · 2008

 

 앨범은 한 아티스트의 가치관이 투영된 작업물들의 묶음이다. 우리는 어떤 앨범을 듣고 소화함으로써 그 앨범을 만든 이의 분위기, 사상, 감정, 그리고 창작의 의도까지도 파악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음악성의 훌륭함을 떠나서, 뚜렷한 컨셉이 심어져 있거나 독창적인 요소들로 채워진 앨범들이 뇌리에 박혀 쉽사리 잊히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앨범에 담긴 음악과 그것이 시사하는 주제가 잘 어울리면 굉장한 시너지가 일어나고, 청자들은 이런 앨범들에게서 더 큰 울림을 받게 된다. 그런 앨범들 중에서도 지독하리만큼 깊은 주제와 대단한 음악성으로 포스트펑크/슈게이징 팬들 사이에서 컬트적인 인기몰이를 한 앨범이 있으니, 바로 코네티컷 출신의 2인조 포스트 펑크 밴드 'Have A Nice Life'의 첫 정규 앨범 'Deathconsciousness'이다.

 

개요

 

 'Deathconsciousness'는 약 5년간의 레코딩 과정 끝에, 2008년에 발매되었다. 총 13곡, 1시간 25분의 러닝타임을 갖는 앨범은 두 개의 파트로 나눠져있다. 첫 번째 파트 'The Plow That Broke the Plains'는 일곱 번째 트랙 'There Is No Food'까지, 두 번째 파트 ‘The Future’는 나머지 곡들로 구성된다. 두 파트는 각각 지닌 매력이 다르고, 더 나아가 각 트랙들도 서로 비슷하면서도 판이한 색채를 갖고 있다.

 

 이 앨범은 대단한 음악성과 심오한 주제를 완벽하게 결부시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포스트 펑크, 포스트 락, 드론, 등의 장르적 색채가 두드러지는 사운드를 통해 조성된 우중충함은 앨범의 주제가 다루는 칙칙함과 정말 잘 어울린다. 암울한 사운드와 깊은 가사들이 완벽하게 맞물려 탄생한 이 앨범은 현재까지도 슈게이징/포스트펑크를 대표하는 명반으로 손꼽히고 있다.

 

꿈도 희망도 없는 사운드, 둠게이즈의 끝

 

 'Deathconsciousness'를 두고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담겨있는 음악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앨범은 다양한 장르적 색채들을 지녔다. 각 트랙들은 저마다 다른 느낌을 갖고 있지만, 모두 포스트 펑크, 슈게이징, 고딕 락, 드론, 포스트 락의 화합을 통해 빚어진 꿈도 희망도 없는 우중충한 분위기의 사운드로 이루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의 트랙들은 조이 디비젼의 영향을 받은 듯한 포스트 펑크 사운드를 기반으로 하며, 슈게이징, 드론, 둠 메탈 사운드가 메인이 되어 곡을 이끄는 구조로 전개된다.

 

"블랙-둠-슈게이징-포크-인더스트리얼-엠비언트-드론-이모-포스트락"

 앨범의 첫 파트 'The Plow That Broke The Plains'의 트랙들은 굉장히 무겁고 웅장하다. 'Bloodhail', 'Hunter'에서는 감정적인 둠게이즈 사운드가 특히 두드러지고, 'The Big Gloom'과 'There Is No Food'에서는 슈게이징 사운드가 빛을 발해 앨범의 무드에 몽환적인 느낌을 더해준다. ‘Who Would Leave Their Son Out In the Sun’에서 등장하는 고딕 락의 뚜렷한 색채는 앨범의 격을 한 층 높여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는 앨범이 다루는 주제들 중 하나인 ‘종교’와 정말 잘 어울리는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역설적인 다채로움을 담은 사운드들의 화합은 어두우면서도 어딘가 서정적인 사운드를 빚어내어 그 어떤 앨범에서도 느낄 수 없는 독특함을 만든다.

 앨범의 두 번째 파트 ‘The Future’의 트랙들은, 제목에서 잘 드러나듯, 앨범의 초반 트랙들보다 더 현대적이고 아방가르드하다. 에너제틱한 일렉 기타로 시작하는 ‘Waiting For Black Metal Records To Come In The Mail’는 앞부분의 트랙들에 비해 훨씬 가볍고 신난다. 그 뒤를 잇는 ‘Holy Fucking Shit: 40,000’, 'The Future', 'Deep, Deep'에서도 첫 파트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사운드들이 등장하며 앞부분과의 분위기 반전을 이룬다. 이런 신나는 분위기는 끝에서 두 번째 트랙인 'I Don't Love'에서 급격하게 가라앉는데, 마지막 두 트랙은 앨범의 첫 파트가 떠오르는 대단한 둠게이즈 사운드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마지막 트랙 'Earthmover'는 약 11분 30초의 러닝타임을 슈게이징을 중심으로 하는 감정적인 사운드로 꽉꽉 채워내며 앨범의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한다.

 

깊고도 완벽한 컨셉: 니힐리즘

 

 이 앨범이 그토록 찬양받는 이유 중 하나인 심오한 주제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위해서는 앨범과 함께 발매된 책자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약 70페이지의 이 책자는 매사추세츠 대학교의 한 종교 역사학 교수가 쓴 것으로, 안티오치안(Antiochean) 컬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안티오치안 컬트에 대한 괴이한 묘사들은 종교, 죽음, 등의 철학적인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deathconsciousness-booklet.pdf — Are.na

Are.na is a platform for connecting ideas and building knowledge.

www.are.na

 이 책자에서 앨범의 주제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부분은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의 서문의 마지막 문단이다.

Knowing that an individual death is meaningless - any individual death, especially your own - that you are not a person, but a statistic - and noticing, more each day, the countless deaths that occur around you - of other people, of animals, of insects, of the sick and infirm, of accident victims, of plants ripped from the earth and worms crushed beneath the blades of plows - of authors in their rooms, scribbling out desperate words in the backs of books no one will ever read- even the shattering of molecular bonds, the disintegration of atomic structures, happening in every moment, millions in each nanosecond, everywhere

 

 요약하자면, 매일매일 수많은 생명들이 죽기 때문에 각각의 죽음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다음 장에 적힌 한 문장으로 응축되어 다시 표현된다.

And It begs the question - “What is the point?”

 

 개개인의 죽음이 의미가 없다면, 무엇이 의미 있는 것인지 묻는 화자는 굉장한 허무주의에 빠진 듯 보인다. 그리고 이는 앨범의 주제에 대한 직접적인 힌트이다. 앨범은 존재의 유한성과 죽음 자체의 무의미함, 그리고 이로부터 오는 극한의 니힐리즘을 주제로 한다. 많은 트랙들에 실린 삶의 무의미성에 대해 한탄하는 가사들과 앞서 소개한 암울한 분위기의 음악은 이런 어두운 주제를 완벽하게 지탱해 준다.

 

<마라의 죽음>, 자크 루이 다비드, 1793년, 캔버스에 유채, 165cm x 128cm, 브뤼셀 왕립 미술관

 'Deathconsciousness'의 앨범 커버를 장식하는 그림은 신고전주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La Mort de Marat)으로, 18세기 프랑스 혁명기의 급진파의 지도자 중 하나였던 장 폴 마라가 욕조에서 반대파의 당원에게 살해당한 후의 모습을 담았다. 장 폴 마라는 공포 정치를 추진한 인물로, 반대파를 투옥, 고문, 숙청함으로써 민중을 장악했던 인물이다. 그런 인물이 차분히 늘어져 죽어있는 모습은 제아무리 강력한 혁명가라도 죽음 앞에서는 그저 평범한 시체로 전락한다는 것을 보여주며, 앨범의 허무주의적인 태도를 요약적으로 드러낸다.

 

총평

 

9 / 10

'Deathconsciousness'의 둠게이즈 사운드와 니힐리즘을 둘러싼 주제는 완벽한 음악성과 컨셉 모두를 잡아낸다. 다양한 장르들로부터 앨범의 분위기에 걸맞은 사운드들을 끌어와 만들어진 화합물은 5년이라는 레코딩 기간이 단번에 이해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으며, 철학적인 질문들을 띄우는 컨셉과 가사는 그 어떤 앨범보다 심오하다. '앨범'이 한 아티스트의 사상과 가치관을 담아낸 하나의 결집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보다 더 뛰어난 앨범이 있을까 싶다.

 

Best: Bloodhail

Worst: Telefony

 

트랙 레이팅

 

The Plow That Broke the Plains

1-1. A Quick One Before the Eternal Worm Devours Connecticut ★★★★☆

1-2. Bloodhail ★★★★★

1-3. The Big Gloom ★★★★☆

1-4. Hunter ★★★★★

1-5. Telefony ★★★☆☆

1-6. Who Would Leave Their Son Out in the Sun? ★★★☆☆

1-7. There Is No Food ★★★★☆

 

The Future

2-1. Waiting for Black Metal Records to Come in the Mail ★★★★★

2-2. Holy Fucking Shit: 40,000 ★★★★☆

2-3. The Future ★★★★☆

2-4. Deep, Deep ★★★★★

2-5. I Don't Love ★★★★★

2-6. Earthmov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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